‘法의 이름’으로 의회와 사법부를 학살하다 국민 43.9% 표를 얻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29) 히틀러와 법

국민이 43.9% 표를 얻고.법명으로 의회와 사법을 학살하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2020.12.01)

1933년 3월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나치 수권법을 제정해 의회 무력화가 이듬해 인민법정으로 대법 대체. 그 후에는 법무 장관이 있었다

히틀러는 총칼로 권력을 탈취한 게 아니라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았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세력을 구금 살해해 의회를 마비시켜 무모한 독재체제를 만들어냈지만 이 또한 형식적으로는 법적 절차에 따른 것이다. 독재 체제는 법적 정당성에 의해 달성된다.

.
日 아유미, 미혼 상태로 또 임신 아버지 같다 일본 톱스타 하마사키 아유미(42)가 둘째 아이 임신 소식을 전했다. 배우 김범이 4년 만에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골목식당 백종원 일침 생각 자체에 문제 오늘(7일) 방송되는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는 26번째 골목 중곡동 시장 앞 골목 다섯 번째 편이 공개된다. 구미호뎐 정이서→방송작가 변신 본방사수 독려 구미호뎐 배우 정이서가 본방사수를 독려했다.

총칼이 아닌 합법적으로 집권한 히틀러 어부지리 총리가 되자, 당장 해산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의사당 방화사건 포고령 선포, 의회 무시하고 체포령

‘사법의 나치화’ 주도한 귈트너, 4월 게슈타포법 … 34정치범, 10만 수용소서 1934년 돌격대 숙청해 수백명 살해, 이듬해 형법 손질, 친위대 체포 합법화

총통 뜻이 법의 원천 1939년 T4 프로그램 30만명 희생 항의하는 판사 총통 뜻 모른다 해직 1942년 의회 스스로 도장 찍고 해산

1938년 5월 독일 법무장관 프란츠 길트너(Franz Gurtner)가 오스트리아 빈의 법궁을 방문한 모습. 길트너는 나치 독재체제 구축을 위해 사법부의 견제를 무력화하는 일을 맡아 처리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만든 악의체제가 어떻게 붕괴되는지 모른 채 1941년 사망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민주주의 파괴 집단에 투표한 독일 국민

바이마르 공화국은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고령의 85세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는 모두 의회 내 다수당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격렬한 권력 투쟁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군소정당 지도자 중 한 명에 불과했던 히틀러가 1933년 1월 30일 어부지리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는 즉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 실시를 결정했다. 선거를 통해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하고 전권을 장악한 뒤 계획대로 국가체제를 재주조하겠다는 의도였다.

투표 일주일 전인 2월 27일 네덜란드 출신의 공산주의자 루베라는 인물이 국회의사당에 불을 낸 사건이 일어났다. 정부는 국가 위급 시 의회의 동의 없이 포고령을 통해 통치할 수 있다는 헌법 48조를 이용해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위험인물을 구금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이런 혼란 상황이 히틀러의 선거 전략에 운 좋게 맞아떨어졌다. 3월 5일 선거에서 나치당은 43.9%의 표를 얻어 집권에 성공했다. 불과 43.9%의 지지를 얻는 나치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실 이는 독일 정치사에서 예외적으로 높은 득표율에 속한다. 독일 국민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집단에 표를 몰아준 것이다.

이후 일사천리로 사태가 진행됐다. 3월 23일 정부에 전권을 위임한다는 수권법(Ermächtigungsgesetz)이 통과되었다. 히틀러는 의회를 거치지 않고 포고령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독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의회는 단지 히틀러의 연설무대 역할을 했을 뿐이다. 4월에는 게슈타포(Gestapo, Die Geheime Staatspolizei)법이 통과됐다. 비밀경찰기구인 게슈타포는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정치행위를 조사했다. 공산당원, 소수 종교인, 유대인, 외국인 노동자, 기타 막연히 사회적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사람들이 보호 조치를 받았다. 국가에 해로운 사람들을 다른 국민으로부터 떼어내 보호, 즉 구금하는 곳은 나치 친위대(SSSchutzstaffel)가 운영하는 수용소였다. 1933년 한 해에만 정치범 10만 명이 수감됐다.

1933년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뉘른베르크에서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당시 독일 국민은 히틀러의 무도한 정책을 국민투표로 흔쾌히 승인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사법사법부 견제를 무력화한 법무부 장관

모든 억압 조치는 밀어붙이기보다 법의 이름으로 시행됐다. 예를 들어 아리안족이 아닌 교수나 교사를 해고하는 조치는 전문직 회생법에 따라, 나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해산하는 조치는 정당창당 금지법에 따라 취해졌다. 히틀러의 무도한 정책을 국민투표로 흔쾌히 승인했다. 11월 12일 국제연맹 탈퇴건은 투표율 96.1%, 찬성률 95.1%로 승인됐다. 나치 일당 독재체제에서 일하게 될 국회의원 명단을 보고 92.1%가 찬성표를 던졌다(그것도 다하우 수용소에 감금돼 있던 사람 2242명 중 2154명이 찬성했다). 1933년 말까지 히틀러는 의회를 고무도장을 찍는 장소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독재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사법부의 견제를 무력화해야 한다. 이 일을 맡아 처리해 준 사람이 법무장관 프란츠 길트너(Franz Gürtner)다. 그도 처음에는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고 최소한의 법적 규범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게슈타포의 무도한 수사 방식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결국 히틀러에게 적극 협력하는 길을 따랐다. 1934년 돌격대 세력을 숙청하는 폭력작전 사례가 대표적이다. 히틀러 정권의 주역이었던 돌격대와 군부가 권력투쟁을 벌이자 히틀러는 군부를 두둔해 에른스트 렘(Ernst Röhm)을 비롯한 돌격대 세력을 제거했고 이 과정에서 피살사건이 수백 건 발생했다. 히틀러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현재 나는 독일 민족의 운명에 책임을 지고 있으며 따라서 독일 국민의 대법관이다. 그리고 반역자들을 총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법무장관 길트너는 ‘국가의 자위조치에 관한 법’을 통해 나치의 테러행위가 긴급사태 시 반역행위를 억압한 합법행위라며 폭력 살인을 용인했다. 살인 행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해 달라는 일부 검사의 요청은 묵살됐다.

1934년 4월 설립된 ‘인민법정’이라는 특수기구가 대법원을 대신해 나치의 정적을 제거했다. 1935년 7월에는 형법을 손질해 게슈타포와 친위대가 수천 명을 구금하는 행위를 방조했다. 이제 범죄자의 정의는 정치적 반대세력, 동성애자를 비롯한 반사회분자,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자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더구나 새 형법은 판사들에게 법규정에만 얽매이지 말고 국민감정을 함께 고려해 판결하라고 요구했다. 게슈타포 창설자 헤르만 괴링은 총통(Führer)의 의지가 곧 법이라고 연설했다. 그 말대로 히틀러의 테러행위에 맞춰 법을 움켜쥐고 나치 사법부를 일궈낸 사람이 로버트 귈트너 법무부 장관이었다.

총통의 뜻이 법의 원천

완치되기 어려운 환자들을 안락사시키는 T4 프로그램(Aktion T4)을 히틀러가 허가하는 내용의 문서. 이 조치로 30만 명 가까운 희생자가 나왔다. 위키백과

1937년 나치에 입당한 뒤 길트너는 나치의 반인도적 전쟁범죄에 적극 가담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치되기 어려운 환자를 안락사시키는 T4 프로그램(Aktion T4)이 그중 하나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30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로타르 크라이슈히(Lothar Kreyssig)가 이 조치가 불법이라고 항의하자 그를 해직하고 이렇게 말했다. 총통의 의지가 법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판사직을 유지할 수 없다.

독일 헌법체제는 유명무실하게 남았다. 1942년 4월 26일 의회는 마지막으로 모여 자살(의회 해산) 문건에 고무도장을 찍고 히틀러에게 기존 법률에 얽매이지 않는 절대적 권한을 부여했다. 사법부는 죽음의 체제에 충실한 조수가 됐다. 1943년과 1944년에 9600명이 처형됐다. 특히 히틀러 암살 혐의로 붙잡혀 200명 가까이 처형됐는데 그 중 해군 제독 카나리스, 장군 한스 오스터,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가 자살하기 몇 주 전에 교수형으로 사망했다. 정작 길트너는 자신이 만든 악의 체제가 어떻게 붕괴되는지 모른 채 1941년 사망했다.

독일 민주주의가 죽은 해라는 1933년은 아직도 악의 체제를 막을 기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이 사악한 권력집단의 거짓말을 용인하고 편향적인 법집행을 감내하려는 순간 사회와 국가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피해를 본 사람이 피해를 반복]

WH 오든의 1939년 9월 1일이라는 시는 희망이 사라져가는 비굴하고 부정직한 시대를 이렇게 노래했다(봉준수 옮김).

엄정한 학문이라면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루터 이래 지금까지 문명을 광기로 몰아간 인간의 모든 죄과를, 린츠에서 일어난 일을, 어떤 거대한 자기도취가 정신병을 앓는 신을 만들어냈을까.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느냐, 악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악을 반복한다는 것을.

망명객 투키디데스는 알고 있던 민주주의 운운하는 뻔한 연설을 독재자들이 하는 것을,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무덤을 향해 하는 늙은 헛소리를.그는 모든 것을 책에서 파헤친, 쫓겨난 이성과 고통이 처음부터 습관처럼 굳어지는 것을, 잘못과 한탄을.우리는 이 모든 고통을 다시 겪어야 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0/12/01/HLPCGJO3KNDF5G2PQ5UDDKFQFY출처:조선일보2020년12월01일*사진:조선일보기사사진db

.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환절기에 접어들었다. GC녹십자엠에스가 현장진단(POCT, Point of Care Testing) 제품부터 코로나19 진단키트까지 유럽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환기가 잘 안 되는 실내 등 이례적인 환경에서 코로나19가 공기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고 공식 인정했다. 한 해 불면증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사람이 6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로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